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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패키지 여행은 가이드 착취의 결과물

조회수 : 7841 2018.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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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805200816001&code=920100#csidx6bcc663bc79c3aba7ca824ae5761d5d 
 
그가 한국을 떠나온 지도 올해로 8년째다. 한국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다 폐업을 했다. 먹고 살아야 해서 구인사이트의 태국 현지 가이드 모집공고를 보고 태국으로 떠났다. 그는 현재 태국 현지인과 결혼해 아이까지 두고 있다. 김한규씨(가명)는 이 바닥에서 베테랑 가이드다. 그러나 그가 지난 15일 3박4일 패키지 투어 가이드 일을 마치고 벌어들인 돈은 마이너스 1만3000바트(한화 45만원)다. 과일값, 물값 등 서비스만 제공하고 돌아온 것은 없었다. 한마디로 망했다.
패키지로 온 손님들이 돈 되는 선택관광을 많이 하지 않았다. 소위 관광객들을 ‘뜯어내야’ 돈을 벌어들이는 구조에서 그는 실패한 장사를 한 셈이다. 하루 15시간 이상 꼬박 가이드 업무를 하고 돌아왔지만 그에게 돌아온 이익은 단 한푼도 없었다. 오히려 회사(랜드사)에 손해를 끼쳤으니 앞으로 그가 맡을 패키지 팀 등급은 더 낮아질 게 뻔하다. 김씨는 패키지 여행을 온 손님들이 가이드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정확하게 안다. 관광객들의 눈에 비친 가이드들은 쇼핑을 강요하고, 선택관광을 하지 않으면 불쾌한 표정을 짓고, 때로는 불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김씨는 “가이드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왕복 항공료 값도 나오지 않는 값싼 패키지 여행이 어떤 착취구조 속에서 만들어졌는지를 한 번쯤 생각해 달라고 했다.

- 노동강도는 어느 정도인가. 
“최근 3년 사이 홈쇼핑 판매 등이 늘어나면서 고객 수는 늘었다. 12~2월, 7~10월을 성수기로 보는데 요즘은 구분 없이 꽤 오는 편이다. 가이드들은 3박4일을 기준으로 한 달에 5~6번 가이드 일을 한다. 모든 패키지원이 한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벽 4~5시부터 공항에서 손님을 모아 호텔로 이동한다. 둘째·셋째 날을 기준으로 본다면 보통 오전 7시까지 호텔 앞으로 나가 함께 일정을 한 뒤 손님들을 숙소까지 모셔다 드리고 가이드 숙소로 돌아오면 오후 11시쯤이 된다. 우리끼리 하는 말로 ‘행사가 망했다’라는 게 있는데 손님들이 선택관광을 안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때는 오후 7시면 일정이 끝난다.” 

- 한국 여행사로부터 여행객을 받아 가이드 업무를 한다면 한국 여행사 소속인가.
“아니다. 여기 가이드 중에 한국 여행사에 속한 정규직은 단 한 명도 없다. 1군 여행사로 분류되는 하나투어·모두투어에도, 2군 여행사로 분류되는 노랑풍선·KRT·한진·참좋은여행·인터파크 등 한국 내 여행사 중 우리 가이드를 정규직으로 채용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우리는 그냥 태국 현지의 불법 외국인 노동자에 불과하다. 기본급, 수당, 4대보험 가입 모두 없다. 그냥 랜드사를 통해 손님을 받아 선택관광과 쇼핑을 진행하고, 수익이 나면 랜드사와 배분해서 갖는 구조다.”


- 가이드의 선택관광 강요 등은 수년 전부터 고질적 문제로 제기돼 왔는데 변화가 없다. 결국 구조문제라는 말인가. 
“한국 여행사들은 그냥 관광객 모집업체에 불과하다. 29만9000원이든, 39만9000원이든 비행기 값만 겨우 나올 돈으로 패키지팀을 꾸려주는 게 끝이다. 랜드사들은 ‘마이너스 투어’를 만들어 놓고 손님들을 받아 가이드들에게 ‘메우기’를 하도록 하는 구조다. 보통 1인당 20만원은 채워야 그 이후부터 수익이 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싼 값에 여행하려고 온 사람들이 현지에서 20만원 이상 쇼핑이나 옵션(선택관광)을 할까. 안 한다. 선택관광을 많이 해야 우리가 돈을 버는데 저렴한 여행이 목적인 사람들이 할까. 그런 손님들을 상대로 메우기를 하려다보면 가이드들이 강압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수익을 얻어야 3박4일 일하고 단돈 1만원이라도 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여행상품 정보에 ‘가이드 팁 40불’ 이런 게 적혀 있는 걸 많이 봤을 것이다. 그 돈은 가이드 팁이 아니다. 애당초 여행사가 다 가져가는 돈이다.” 

- 상황이 이 정도면 정리하고 한국으로 오든지, 현지에서 항의를 해야 할 문제 아닌가.
“몇 년에 한 번씩 파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다 무산됐다. 협상 전날까지도 메우기 금액 폭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겠다던 한국 여행사가 돌연 태도를 바꾸기 일쑤다. 물밑작업을 벌인다. 가이드 파업 찬반투표 후 파업에 반대하는 현지 랜드사에 일감(손님)을 몰아주거나, 파업에 동참한 가이드들은 일을 못하게 팀을 안 주는 방식으로 항의조차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도 안해본 게 아니다. 다른 가이드들에게도 매번 물어본다. ‘여기서 이렇게 비전이 없는데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까?’ 그런데 갈 수가 없다. 나는 현지에 가족이 생겼다. 다른 가이드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 가족을 데리고 한국에 돌아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온다. 모아놓은 돈도 없다. 갖고 있는 돈으로 가족들이 살 집 전세보증금은커녕 월세방도 얻을 수 없다.”

- 패키지 여행상품이 비싸지면 가이드들이 좀 덜 힘들어진다고 할 수 있나.
“39만원짜리 상품이든, 79만원짜리 상품이든 현지 가이드가 메우는 금액은 같다. 39만원짜리와 79만원짜리 상품 차이는 마진이 아닌 비행기와 호텔 등급 차이일 뿐이다. 설사 좀 더 비싼 패키지 상품으로 오더라도 한국 여행사들이 ‘보전비’ 형태로 챙기는 것일 뿐 우리 가이드들이 메워야 하는 금액은 항상 동일하다. 내 이름을 구글이나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친절한 가이드라는 글이 나온다. 나는 강제옵션, 강매쇼핑으로 문제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회사 입장에서는 일 못하는 일개 가이드다.”
동남아 현지 한국인 가이드들의 과로사? 
동남아 등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가이드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정확한 사망숫자조차 집계하지 않고 있다. 현지에 있는 가이드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알려질 뿐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베트남과 태국에서 숨진 가이드는 내부에서 알려진 인원만 4명이다. 명확한 사망원인은 알 수가 없다. 현지에서 부검이 이뤄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과로사로 추측만 할 뿐이다. ㄱ씨(당시 45세)는 지난해 9월 골프를 치러 온 손님들을 개인적으로 받아 근무하다 숨졌다. ㄱ씨는 랜드사에서 보낸 패키지 손님들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그날 저녁 공항에서 또다시 개인적으로 골프투어 온 손님들을 받았다. 다음 날 오전 6시 고객들을 골프장으로 데려다주는 봉고차 안에서 잠이 든 ㄱ씨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ㄴ씨(당시 39세)는 숨지기 석 달 전부터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패키지 고객을 받았다. 랜드사에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조금만 쉬었다 다시 일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매번 같았다. “이번 손님들만 받으면 쉬게 해줄게.”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3박4일 패키지팀을 공항 4층에서 배웅하고 기다렸다 오전 2시40분에 도착하는 새로운 팀을 받았다. ㄴ씨는 손님을 숙소에 데려다 놓고 오전 9시에 투어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오전 9시가 지나도 ㄴ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가이드 숙소에서 이미 숨져 있었다. 동료들은 “과로사”라고 했지만 여행사가 최종적으로 밝힌 사인은 심장마비라고 했다. 
베트남에서도 2건의 죽음이 있었다. 그 역시 손님들을 데리고 다니며 가이드를 하다 그 자리에서 숨졌다. 생활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다. ㄷ씨(당시 49세)는 가이드 일을 해도 돈이 모이지 않자 카지노에서 300만원을 쏟아부었다가 모두 탕진했다. 당장 먹을 밥값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동료 가이드들에게 밥을 구걸하러 다녔다. 결국 우울증으로 고통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지 가이드는 “우리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불법 외국인 노동자”라며 “우리도 한국인이지만 한국정부의 누구도 우리의 열악한 실태를 알려고 하지 않고, 죽음조차 가볍게 취급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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