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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태국 총선과 이후 태국에 거는 기대

조회수 : 6217 2019.03.26

 

*2019 태국 총선에 나섰던 태국 총리후보들. 맨 위가 쁘라윳 총리(방콕 포스트)

 

태국의 가장 큰 화두였던 총선이 3월 24일 치러졌다.

총 500명의 하원을 뽑은 이번 선거는 향후 태국정권의 주인을 결정하는  ‘초대형 이벤트’ 였다.  언제 열리냐를 두고 오래도록 뜸을 들인 사안으로 관전포인트는 무척 간단했다.  ‘선거의 명수’ 탁신파의 정권 재탈환 vs  현 집권군부의 정권 연장. 

선거 결과는 한달 뒤에 공식 발표된다. 하지만94%의 개표를 토대로 태국 언론에서 분석한 것을 보면 예상과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다. ‘간당간당’하게 여겨졌던 현 군부의 재집권 성공은 확실해 진 반면 탁신파의 정권 탈환은 ‘사실상’ 물건너 갔다.  지역구 의석수 확보에 1등을 차지한 친(親)탁신파가 ‘압승’하지 못한 게 실패의 원인이라는 게 다소 아이러니컬하다.  

종전의 룰이라면 그렇지 않았다.  지역구 투표에 앞선 정당에게 새 정부구성의 우선권이 주어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집권군부가 만든 새 헌법은 기존 방식을 크게 바꿨다.

 

현 태국정권은 2014년 5월 쿠데타를 선언한 뒤 5년 째 정부를 이끌고 있는 쁘라윳 찬오차 수상이 주도하고 있다. 그가 이번 선거에서 수상후보로 나선 정당이름은 팔랑쁘라차랏(Palang Pracharath). 태국어로 ‘국민의 힘’이란 뜻.  쿠데타 후 장관 등 정부 요직을 맡던 사람들이 당의 주요직을 맡고 있다. 

팔랑쁘라차랏 당과 대척점을 이룬 친 탁신당은 푸어타이(Pheu Thai) 당이다. ‘태국을 위하여’란 뜻이다. 2006년 쁘라윳 찬오차 총리의 선배 군인들이 몰아낸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정당이다.  탁신 전총리가 1998년 만든 정당 ‘타이락 타이’ 당이 몇번의 이름을 바꿔 20년 넘게 뿌리를 이어가고 있는 당이기도 하다. 

2000년 대 이후 친탁신 당은 선거의 명수였다.  탁신이 당을 이끌던 2001년, 2005년을 비롯해 선거만 하면 대승.  태국인들이 가장 많은 동북부에 견고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덕이었다.  곡창지대인 태국 동북부 사람들은 농사짓는 저소득층이 많은데 북부 태생이기도 한 탁신은 이곳에 엄청 공을 들여 환심을 샀다. 태국 정치인들은 ‘포퓰리즘’ 정책의 결과라고 한다.  반(反)탁신파이자 태국 군부는 이런 탁신과 친탁신파를 견제하기 위한 헌법과 제도를 쿠데타를 일으켜 고안하고 바꿔놨지만, 선거만 하면 ‘백약이 무효’였다.

이번 총선 전까지 태국은 2000년 이후 3번의 총선을 치렀는데 모두 탁신파의 승리였다.  2006년 탁신이 쿠데타로 물러난 뒤 모두 6번의 총리가 들어섰지만 선거로 뽑힌 총리는 탁신 전 총리의 여동생인 잉락 전 총리 딱 1명뿐이었다.

 

과거에는 총리가 되려면 하원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면 됐다.  그런데 2014년 5월 정국 혼란으로 잉락 총리가 탄핵된 가운데 총리가 공석이 됐고, 이후 며칠 뒤 쿠데타를 ‘선언해(정부 주요인사들을 회의한다고 불러 구금한 뒤 다음달 쿠데타를 했다고 선언함)’ 정권을 잡은 당시 육군총사령관 쁘라윳 찬오차의 현 정부는 상원 250명도 총리투표를 할 수 있도록 헌법을 뜯어 고쳤다.  그리고 상원 250명은 쿠데타 정부가 만든 NCPO(국가평화질서위원회)에서 임명토록 했다. 결국 상원은 군부정권의 ‘굳은자(누가 가지게 될지 주인이 정해져 있는 물건)’인 셈이다.  2006년 탁신을 몰아낸 군부 쿠데타 이후에도 당 간부가 불법을 하면 당 해체, 5년간 정치활동 금지 등의 헌법수정을 단행했지만 이번 군부는 더 과감했다. 

결국 친탁신파가 정권을 탈환하려면 총 상하원 총 750석의 과반인 375석을 확보하며 과거와 같은 압승을 거둬야만 했다.  선거만 하면 이기는 과거의 전력으로 봐 일부에선 푸어타이 당의 정권탈환 시나리오도 살짝 예상됐었다.

 

 

총선 하루 뒤 94% 개표 결과, 태국 ‘3.24 총선’ 결과는 비례대표 포함, 친탁신 푸어타이 당이 135석으로 1위고, 2위는 119석의 현 쁘라윳 총리의 빨랑쁘라차랏 당으로 예상되고 있다.

쁘라윳 총리는 ‘굳은자’ 상원 250석+이번 선거 119석을 합친 뒤 군소정당 6석만 끌어들이면 과반인 375석을 넘어서 집권이 손쉽게 가능하게 됐다.  반면 푸어타이 당은 지역구에선 승리했지만  군소정당과 이리저리 연립을 해도 쁘라윳 총리의 ‘상원표’를 극복하긴 쉽지 않게 됐다.  지난 2011년 선거에선 265석이나 얻어 잉락 총리를 배출해 냈지만 이번엔 하원만 100석 이상이 줄었으니 어찌 해보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

눈여겨 보게 되는 것은 이번 선과결과가 나타내 주고 있는 태국 민심의 변화다. 친탁신 푸어타이 당은 이번선거에서 총 득표수에서 조차 쁘라윳 총리의 당에 뒤졌다.  쁘라윳 총리의 당은 총 769만 표를 얻었지만 푸어타이 당은 720만표에 그쳤다.   ‘선거의 명수’ 탁신의 영향력이 ‘마침내’ 감소했으며, ‘태생’이야 어떻든 ‘시위 없는 사회 안정’을 추구해온 군부정권이 지지 받았다는 유추 해석이 가능하다.  탁신이 실각한 2006년 이후 2014년까지 극렬한 거리 시위와 인명 사망, 이로 인한 관광객의 감소, 해외투자의 감소 등은 태국의 발전을 거꾸로 돌려놓은 요인 중의 하나였다. 

친탁신과 반탁신으로 2등분됐던 태국인들의 정치성향도 다원화됐다.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당이자 탁신과 대립각을 세우며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연립정부를 이끌었던 민주당은 ‘확실한’ 쇠퇴기에 처한 느낌이다. 이번 선거에서 100석을 목표로 했지만 절반수준인 55석 전후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대표인 아피싯 전 총리가 선거패배의 책임을 인정하고 선거 날 저녁 당장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반면 신생 정당, 젊은 정당으로 반군부를 표방하며, 군부중심의 헌법개정, 국방비 감소, 정부의 투명성, 민주주의 제도의 강화를 외친 퓨처포워드 당은 총 86표를 수확하며 제 3당으로 떠올랐다.  진보적 색채의 이 당은 억만장자 타나톤 주앙룽루앙낏이라는 39세의 기업인이 이끌고 있다.  여당과 연립을 하면 장관직 몇개는 맡을 것이며, 야당과 연립하면 무시못한 정권 견제세력으로 확장능력을 갖출 것이다.

총선의 결과가 공식 발표되기 전 쁘라윳 총리는 상원표를 단속하며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한 군소정당과의 연립에 공을 들일  전망이다.   친탁신파도 연립을 위한 몸부림을 칠 것으로 보인다. 어디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만큼 합종연횡의 물밑작업들이 앞으로 한달여간 태국 언론을 장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태국 선거에서 총 유권자 5천200만 명 가운데 투표율은 기대치를 훨씬 밑도는 66%. 무려 200만 여의 표가 무효처리됐다는 것은 논란이 여지가 있다.  상원이 총리투표에 가세하게 한 집권군부의 헌법 개정도 훗날 태국역사에서는 쟁점이 될 것이다.

현 정부가 향후 4년을 이끌게 되어도 여전히 제 1야당으로 남아있을 친탁신 푸어타이 당의 견제는 크다.  감소했을 망정 탁신 전 총리의 영향력도 배제 못한다.  쁘라윳 총리가 집권한다면 이젠 ‘민주주의’ 방식을 통해 사회안정을 이루고 경제성장을 해야하는 숙제를 안고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특히 올해 태국은 아세안 의장이어서 어깨가 더 무겁게 됐다. 

 

태국정치와 선거는 사실 한국인들의 큰 관심사는 아니다.  이름조차 생경한 태국 정당과 일부 정치인들의 이름과 분석까지 곁들어 속보를 이어가는 한국언론의 보도가 무엇에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다만 ‘옐로셔츠’와 ‘레드셔츠’란 색깔 시위대의 오랜 대립으로 국제공항이 폐쇄되고 백화점 앞에서 총탄이 날아다닌 과거 몇년간의 극심한 대립은 연간 200만 명이 넘게 태국을 방문하고 있는 한국 여행객들과 주재 한국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불편과 인내를 감수케 했다.  태국이 이번 총선을 발판으로 사회안정을 이루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공평히 주어지는 민주주의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어 갈지 주목된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빛의 속도보다도 더 빨리 정보가 공유되는 21세기에 태국이 더 이상 쿠데타와 같은 전 근대적 방식으로 정치체제를 바꾸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