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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또 다른 세상, `PPL 천국’

조회수 : 11241 2018.08.29

태국 아침뉴스 프로그램인 Ch3 TV의 ‘르엉 라오 차오니’.  한국어로 `아침 이야기’ 쯤으로 번역되는 이 프로는 2003년 6월 2일 첫 방송된 이후 태국인들에게 다양한 분야의 뉴스 시사, 생활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인기 생방송 프로그램이다. `르렁 라오 차오니’에 아침마다 빠지지 않는 것은 MC 앞에 놓여지는 예쁘장한 음료 잔이다. 특정 커피상품의 브랜드 이름을 정확하고도 또렷이 노출시키는 시키는 PPL(Product Placement), 이른바 간접광고다.  `아침=커피’의 이미지가 맞아 떨어지며 이 브랜드는 소비자의 잠재의식에 오랫동안 스며들고 있다.


*오랫동안 커피브랜드를 PPL로 사용하고 있는 태국 Ch3의 아침프로 ‘르렁 라오 차오니’(방송화면 캡처)

 태국의 시트콤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 중의 하나는 슈퍼마켓이다. 등장인물들이 머리 손질 이야기를 하면 뒷 배경에 샴프가 노출되고, 빨래 이야기를 이어가면 세제 제품이 보인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입원이라도 하면 침대 머리맡 마다 병원이름이 붙어 있어 웃음짓게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 제품명이나 이미지를 노출시켜 간접 홍보하는 PPL을 태국에선 보통 타이인(Tie In)이라고도 많이 부르는데 `간접’이 아닌 `직접’이란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광범위하고 일반화되어 있다. 드라마, 영화 제작자들에게 PPL은 일반광고와 함께 주요 수입원이며, 상품 판매자들에게는 자유로운 맞춤전략 구사가 가능한 `가성비 높은’ 마케팅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직접적 규제 없는 태국의 PPL
태국 방송 관계자들은 태국은 오래 전부터 PPL이 자유로운 전세계 몇 안 되는 나라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마디로 PPL을 직접 규제하는 법 자체가 없다. 한국만 하더라도 2009년 까지 PPL은 방송에서 법적으로 금지됐다가 2010년 1월부터 허용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광고를 프로그램과 혼동할 수 있고, PPL을 사용하지 않은 기업들에겐 불공정한 경쟁으로 보았다. 허용범위도 주로 오락과 교양분야며 일반방송에 비해 규정도 까다롭다.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100분의 5 이내, 방송 전 자막고지, 해당상품의 언급이나 구매이용 권유금지 등이 적용된다. PPL이 과도하다고 판단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바로 시청권을 침해했다며 행정지도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태국에서 PPL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광고관련법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소비자보호법, 알코올 및 담배 통제법, 화장품법, 음식법 등이다. 소비자 보호법은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거나 불공정한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과장, 허위광고도 규제한다. 알코올과 담배 법은 어떤 장소에서든 전시를 불허하고 있으며, 직-간접 광고 또한 못하도록 규정했다. 태국 PPL은 이런 관련법 규정만 준수하면 자유로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장품, 음식 등을 PPL하려면 해당법의 광고규정을 살펴보고 준수하면 될 뿐이다.

■가성비 높은 태국의 PPL
태국에서 PPL 효과를 톡톡히 본 케이스는 알려진 것만 해도 적지 않다. 가장 최근의 예는 태국 Ch3의 수목 드라마 `붑페싼니왓’. 현대와 고대를 넘나들며 전개된 이 드라마는 시청률 20%를 웃돌며 태국 전통 의상이 불티나게 팔리고, 촬영지인 아유타야 관광특수가 일어났다. 태국 전통 복구붐까지 일어나자 태국 총리는 출연진과 제작진을 정부총사에 초대하는 일도 있었다. 한국 방송사가 태국에 포맷 수출한 `마스크 싱어’에서 열대과일 두리안 의상을 한 가수가 화제를 일으키자 태국 두리안 시장이 요동쳤다.


*태국 열대과일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던 ‘마스크 싱어’의 두리안 가면(방송화면 캡처)

 

 2010년 한국 풀로케 태국영화 `권문호(헬로스트레인저)’가 태국영화 박스오피스에 오르자 주인공들이 영화 속 한국여행 곳곳에서 입었던 것과 똑같은 알록달록한 `리바이스’ 브랜드는 품절을 빚기도 했다. `The Voice Thailand’란 태국의 오래된 음악프로는 가수 인터뷰 시 노출시키는 음식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영화의 인기로 품절을 빚은 한국풀로케 태국영화 ‘권문호’ 주인공들의 의상(한태교류센터 KTCC)

태국의 PPL의 비용은 일반광고에 비해선 저렴한 편이다. 프라임 타임(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기준, 태국 주력방송사의 광고비는 프로그램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개 1분당 40만 바트에서 50만 바트. 여기에 인기 연예인을 모델로 쓸 경우 1분에 100만 바트 이상의 출연료를 지급해야 하고 광고제작비 등을 감안하면 광고비용은 훨씬 더 늘어난다. 이에 비해 PPL은 비용도 적고, 컨텐츠와 잘 융화되면 효과도 높다.


*태국판 ‘풀하우스’의 한 장면, 한국 행 항공기의 기내식에 한국음료가 PPL되고 있다.(한태교류센터 KTCC)


□태국 방송들의 프라임 타임 광고비


*분당 광고비는 매체와 프로그램에 따라 다를 수 있음

PPL 직접 규제법은 없지만 태국에선 종종 PPL이 관련법에 저촉되어 문제가 되는 것은 유의해야 한다. 특히 담배와 알코올 규제는 엄하다. 최근엔 태국의 유명스타들이 무더기로 맥주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SNS에 간접광고를 한 것이 드러나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해당 연예인들은 대부분 경찰조사를 받고 벌금형을 받았다. 드라마 `Club Friday’는 담배 간접광고가 인정돼 연출진들이 벌금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태국 TV의 인기프로그램에서 간접광고비는 5초에 최고 100,000 바트까지 책정되기도 하지만 일반광고에 비해 강한 `자극 전이효과’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내용과 동떨어진 일방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거나 노골적인 케이스는 오히려 역효과가 있다고 인식된다. 직접 규제법은 없지만 무분별한 PPL 대신 콘텐츠와의 자연스런 연결을 추구하려는 것도 이런 오랜 노하우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류와 태국 PPL
2000년 대 중반부터 시작된 태국 한류는 태국내 한국제품의 엄청난 간접광고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특히 화장품, 패션 등 뷰티 분야다.태국 한류가 시작되기 전인 2002년 태국에 수출된 화장품은 총 8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2012년엔 5천870만 달러로 10년만에 무려 72배나 증가했다. 2000년 대 중반 이후 태국에서 방송된 한국드라마는 미니시리즈 위주의 멜로물로 젊고 아름다운 한국여성들은 태국인들의 동경이었다. 2009년~2010년 몇몇 한국화장품은 이 덕에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9년 한국 눈 화장제품은 전년대비 1,800배, 2010년 입술화장은 780배, 매니큐어와 패디큐어는 무려 4,200배가 증가했다.  2008년~2009년 2년 사이 태국 공중파 TV에선 역대 최다인 무려 86편의 한국드라마가 방송된 해였다. 당시 드라마 속 한국연예인들이 착용하던 컬러렌즈는 개성 있고, 눈동자가 커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어 태국여성들에게 날개 돋친듯 팔렸다. 업체의 범람,  싼 중국상품의 진출로 호황이 길게 이어지지 못했지만 한국의 한 업체는 개당 900~1천바트 짜리 컬러렌즈를 연간 200만개나 태국에 수출하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태국에선 화장품, 뷰티 등의 제품이 급성장했다.(The Bridges)

태국에선 생머리나 머리를 일자로 펴는 일본 스타일의 헤어스타일이 유행했지만 C형 머리 안쪽으로 웨이브를 주거나 짧은 단발 등 시크하고 발랄한 이미지를 주는 헤어스타일이 유행한 것도 한국드라마의 영향이다. 송혜교, 김민희, 공효진, 윤은혜, 신민아 등 드라마 속 한국여성의 헤어스타일에서 영향 받은 것이었다.  메이크업도 빨간 볼 터치가 주류를 이뤘다면 자연스러움이 강조됐다. BB크림을 광고하며 `한국수입품’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피부보호크림 광고에 한국어 등이 등장한 것은 한국드라마가 한국 뷰티산업 전반에 불러일으킨 `광의의 PPL 효과’라고 볼 수 있다. 한류의 상승세가 한창이던 2008년 방콕 코트라가 태국 탐마삿대학 Ms.Khemica의 연구논문을 인용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방콕거주 400여 명의 여성소비자 중 78%가 한국산 화장품을 구입해 써본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의 새로운 트렌드 SNS PPL
SNS 이용자의 폭발적 증가로 태국 PPL은 새로운 전환을 맞고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이 대상이다. 인터넷 스타는 1회의 간접광고 포스팅에 8천-1만 바트를 받지만 톱스타는 5만-15만 바트 까지 다양하다. PPL 가격책정은 팔로워 수를 기준으로 책정된다. 팔로워 1인 당 1바트로 산정 한 뒤 총 팔로워의 10%를 PPL 가격으로 계산하는 식이다. 가령 80만 팔로워를 가진 연예인은 자신의 계정에 총 80만 바트의 밸류를 부여하고 1회 포스트에 8만 바트를 받는다. 또 `10포스트=20만 바트’ 등의 패키지를 구성하기도 한다. SNS PPL은 최근 몇 년 사이 태국 유명스타들의 새 수입원으로 떠올랐고 방송 PPL을 빠르게 대체해 나가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SNS의 PPL은 방송 영화 기법과도 유사하다. SNS 라이브 채팅 배경에 제품을 등장시키기도 하고, 제품을 사용후기 형식으로 직접 포스팅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세금규정도 현재로선 마련되어 있지 않다.  대가를 받고 한 것인지, 또는 자발적 포스팅 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 태국은 별도의 과세규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국의 PPL 제작과 참여과정은 우리의 사례와 비슷하다. 영화나 드라마의 스크립트를 완성한 뒤 프로덕션 과정에서 제작진의 제안 또는 기업의 요청에 의해 PPL이 이루어진다. 태국의 PPL이 오래 전부터 일반화, 광범위화 된 데에는 방송 제작 시스템과도 상관관계가 있다. 태국은 방송사가 외부 프로덕션에 상당부분의 방송시간을 판매한다. 외주사는 광고와 PPL를 통해 제작비를 감당하고 이윤을 내야 하기 때문에 스폰서 위주의 제작시스템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우리 기업들의 태국 PPL의 활용 전략과 전망
K-POP이 `고공행진’하며 태국한류의 인기는 여전히 높지만 2000년 대 중반 ‘반짝 특수’를 누렸던 컬러렌즈처럼 한국드라마와 연계돼 저절로 PPL 효과를 본 `대박 상품’은 나오지 않고 있다. 2015년 4월 태국에선 24개의 디지털 TV가 본격 출범했다. TV의 증가로 태국 디지털 방송사들이 질 높은 한국 드라마, 오락 등 한국 콘텐츠를 활발히 수입할 것이 예상돼 PPL 효과도 기대됐다. 그러나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태국 디지털 방송사들이 재정부진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  일부 디지털 방송사들은 몇 년 전의 설날프로 예능프로그램을 여전히 우려내고 있는 실정이다. 철 지난 컨텐츠가 화장품, 패션 등의 유행을 선도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외국기업 중 태국에 오랜 기반을 갖고 수도 많은 일본 기업들은 PPL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국 진출 한국기업들에게도 PPL은 좋은 마케팅 수단이다. 우선은 한국 컨텐츠가 여전히 다량으로 소개되고 있으므로 드라마 등 한국 영상물과 연계된 태국사람들의 반응을 세심히 관찰하고 소비 트렌드에 주목할 것이 요구된다. 태국에서 제작되는 방송, 영화, SNS의 추이와 트렌드의 궤적도 따라갈 필요가 있다.  PPL은 광고보다는 저렴하고 태국에서 그 방법은 널려 있다. 태국 TV나 영화를 잘 살피면 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