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KTCC 칼럼 Home  >  게시판  >  KTCC 공지

태국 극장에서 왕 찬가 나오면 기립에 유의!

조회수 : 10968 2019.05.31

 

 

좀 어색하더라도 해외여행 때 그 나라의 법을 지키고 정서를 존중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태국에서 특별히 조심해야할 것은 그다지 많지 않지는 않다고 생각되지만 국왕과 왕실에 대한 예의는 유의해야 한다. 국왕에 대한 불경이나 모독은 내국인이나 외국이나 다르지 않게 단호히 처벌되고, 태국인 정서에도 반하기 때문이다.

 

태국에선 영화 상영에 앞서 국왕찬가가 나올 때는 기립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한 태국여성의 사건이 최근 태국 SNS를 달구고 있다. 

 

지난 5월 8일 엘리스 린이라는 태국여성은 ‘명탐정 피카추’를 보러 저녁 때 쯤 극장을 찾았다. 영화 상영전 국왕찬가가 나왔지만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다리가 불편했기 때문. 이 사정을 모르는 뒷줄의 한 남성이 “태국 사람 아니요? 국왕에 대해 예의를 갖추시오”고 충고했고, 이 여성은 “알고 있다. 다리가 불편하다”고 대답해 넘어가는 듯 했다.

 

문제는 영화가 끝난 자정 쯤 두 사람이 화장실 앞에서 마주쳐 입씨름을 하며 커졌다. 불편하게는 보였지만 여성이 멀쩡하게 걷는 것을 본 남성이 ‘왕실 불경죄’라며 소리치고 경찰에 신고까지 한 것. 

 

이 사건이 SNS를 통해 전해지자 태국인들은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주로 여성을 두둔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선 “화장실 갈 정도라면 잠깐 일어설 수 있었다”며 비판하고 있다. 만약 멀쩡한 사람이 국왕 찬가 때 앉아 있었더라면 논쟁의 여지가 없었던 상황임은 물론이다.

 

태국 극장에선 영화 상영 전에 국왕찬가가 나온다. 하루에 한번 나오는 게 아니고, 모든 영화 상영 전에 번번이 나온다. 극장 뿐만 아니라 대중공연 때도 행사전 국왕찬가를 반드시 연주하도록 되어 있다. 이때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경의를 표시한다.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국왕 모독죄는 최고 1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지만 극장에서 국왕찬가가 나왔을 때 기립하지 않은 것이 ‘불경죄’에 해당하는 지는 사실 명확하지 않다. 몇 차례의 법원 판례도  다르다. 

 

1978년 반공집회 때 소란을 피운 한 남성에 대해 태국 대법원은 왕실 모독죄로 2년형을 선고했다. 국왕찬가가 나오자 당시 남성은 욕설을 곁들이며 “이게 무슨 노래야”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러나 2007년 한 민주주의 운동가에 대해선 무혐의 처리됐다. 당시 27세의 반쿠데타 단체 임원인 태국 남성은 극장을 찾았다가 국왕찬가에도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이를 본 두 좌석 뒤의 40세 남성이 “어이, 일어나요, 일어나”했지만 끝까지 앉아 있었다. 결국 극장 스태프의 신고로 경찰에 소환됐는데 이 사람은 

 

“왕을 공격할 생각은 없었다. 사물을 볼 때 누구나 다른 시각으로 볼수 있는 것 아니냐. 일어나든 말든 선택의 권리가 있다”고 당당히 밝혔다. 한 술 더 떠 “왕실 모독을 규정한 태국형법 112조가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다른 정치적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며 ‘대차게’ 맞섰다. 

 

이 남성의 사법처리 여부에 대해선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5월 12일 태국 일간지 카우솟 영문 온라인에 따르면, 태국 검찰은 이 남성을 무혐의 처리했다고 전했다. 2008년에도 한 남성이 국왕찬가가 나올 때 일어서지 않았으나 ‘정신적 문제가 있다’며 무혐의 처리됐다.

 

왕실 모독과 관련해 태국은 2가지의 법이 있다. 

 

첫째는 형법 112조로 왕, 왕비, 왕위 계승자를 모독했을 때는 3년에서 최고 15년의 징역에 처해진다. 

 

또 하나는 국민문화왕령 제 6조인데 사회문화 공식행사에는 국가와 왕실찬가 등을 연주하도록 되어 있으며 이를 어기는 사람은 100바트의 벌금이나 한 달 간의 구금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태국 역사학자들은 극장에서 왕찬가가 나온 것은 1910년 이후 영국 조지 5세 때 부터라고 밝히고 있다. 1차 대전 기간으로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왕실에 대한 충성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한다. 

 

2차 대전 이후 1960년대 들어서는 무의미 해졌다. 많은 학생들이 따르지 않았고, 영국에선 결국 폐지됐다. 하지만 영국에서 교육받은 태국 극장주들은 이런 관행을 수입했다는 것이다. 태국에서는 원래 국왕 사진과 찬가가 영화 마지막 부분에 나왔지만 1970년 쯤 무렵부터는 영화 상영 전에 트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태국 극장에서 국왕 찬가가 나올 때 기립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경죄 여부는 다를 망정, 태국사람들의 정서는 이 것을 왕실과 국왕에 대한 존경의 표현으로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이와 함께 태국에선 매일 오전 8시와 오후 6시엔 국가(플랭찻타이)가 연주된다. 이때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기립한다.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엔 생소한 광경이겠지만 한국도 1940년부터 1990년까지 ‘대한뉴스’라는 주로 정부홍보 상영이 극장에서 실시됐고, 영화 전 애국가가 상영됐다. 또 1971년부터 1989년까지는 오후 6시에 국기 하강식이 진행돼 가던 길을 멈추고 국기에 대해 경례를 했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지난 2015년엔 국기 하강식 부활논의가 있다 폐지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