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성향의 40대 초반 정치인의 총리선출이 ‘사실상’ 불발되며 국제적 화제가 됐다.
그 때문인지 관심권 밖이었던 태국 정치상황이 한국에도 빈번하게 보도된다.
그런데 살펴보면 중요 인물이나 정당의 표기가 ‘내맘대로’ 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것이 똑같을 수 없지만 태국인들이 듣기에 비슷해야 하지 않을까?
*프어타이 당의 세타 타위신 의원이 차기총리로 유력시 되고 있다. 오른쪽은 연정구성의 주도권을 쥔 프어타이 당의 로고.
우선 연립정부 구성을 주도하고 있는 ‘프어타이(เพื่อไทย)’
당에 대한 국내언론 표기다. 한마디로 엿장수 맘이다. 잠깐만 뉴스검색을 해봐도 서울신문, 경향신문은 ‘프아타이’로, 한국일보, 서울경제신문은 ‘푸어타이’로 보도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어느날은 ‘푸어타이’, 또 어느날은 ‘프아타이’로 돌려쓰길 한다.
태국어의 ‘프어 เพื่อ’는 영어의 ‘For’로 ‘-를 위해’라는 뜻. 태국인 열명을 불러놓고 ‘푸아타이’라고 들려주면 다 틀렸다고 말한다. ‘푸아’로 발음되는 단어는 눈을 씻고 봐도 태국어 사전에는 아예없다.
이 프어타이 당을 이끌고 있는 유력 총리후보는 ‘세타 타위신 เศรษฐา ทวีสิน’ 의원인데 어쩐일인지 국내 언론은 ‘스레타 타위신’으로 대부분 적고 있다.
‘เศร’를 한국어로 순서대로 표기하면 ‘ㅔ’ ‘ㅅ’ ‘ㄹ’ 이고 ‘ㄹ’은 묵음이어서 ‘세’로 표기해야 하는데 누군가 곧이곧대로 영문으로
‘srettha’라고 표기했고, 이 영문을 한글로 그대로 퍼서 옮겼기 때문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1음운은 원칙적으로 1기호로 적는다’는 우리말의 외래어표기 원칙을 따른다면 ‘셋타 타위신’이 정확하겠지만 태국어 전공자들은 태국인들이 발음을 강하게 안하고, 현지음도 ‘세타’로 들릴수 있으니 ‘세타 타위신’으로 표기해도 무방할 것이라는 의견을 펴기도 한다.
어쨌거나 ‘스레타’ 만은 명백한 오기다. 서울신문, 동아일보가 ‘스레타’로 보도하고 있고, 4월 중순까지 ‘스레타’로 표기하던 조선일보는 언제부터인가 ‘세타’로 바로 잡은 것 같다.
아마도 ‘스레타’로 적고 발음하는 동아일보 기자가 태국에 출장와서 “스레타 총리후보님!”하고 질문한다면 '외국기자' 임을 감안해도 자기이름 부르는 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프어타이’ ‘세타 타위신’ 등 현지음에 가까운 표기를 하는 곳은 오히려 ‘태사랑’ 등 태국 온라인 커뮤니티의 일반인들이다. 언론이라면 일반 태국 관심자들보다 좀 더 신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태국의 국가원수인 국왕의 이름 표기다.
정확한 표기가 ‘วชิราลงกรณ 와치라롱껀’인데 2019년 5월 국왕 즉위 전후부터 지금까지 국내 언론표기는 ‘와치랄롱껀’, ‘와찌라롱꼰’ ‘와찌랄롱꼰’ 등 여전히 각각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듯한 게 ‘와찌랄롱꼰’인데 ‘찌’가 아니고 ‘치’며 ‘랄’이 아니고 ‘라’인데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 ‘와찌랄롱꼰’이란 발음을 귀담아 들은 태국인들은 ‘틀렸다’고 입을 모은다.
외래어 표기를 관장하는 곳은 국립국어원이다.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태국 국왕의 표기법은 ‘와찌랄롱꼰’인데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름 중간에 표기된 '라’를 ‘랄'로 표기한 것이다.
태국어의 외래어 표기법칙은 2004년에 제정되었다. 엘(l) 발음이 단어 중간에 들어가면 한국어로는 `리을' 'ㄹ'을 두개 표기하는 게 현지어 발음에 더 가깝다는 ‘일반 원칙’을 정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은 태국국왕 이름 표기를 정하며 중요한 상위 원칙을 무시했다. 외래어 표기의 ‘공통특징’은 현지국가에서 쓰는 표기를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음소는 하나의 소리에 대응한다'는 게 있지만 '와치랄'로 표기할 'ㄹ'의 음소가 태국어 표기에는 아예 없다. 태국어 학자들도 이에 동의한다.
마지막의 `꼰'과 '껀'은 태국 발음이 `오'와 `어'의 중간 쯤의 발음이라 어떻게 표현하든 ‘용서’가 되지만 현지어 발음은 사실 ‘껀’이 조금 더 가깝게 들린다. 필자가 몇년전 국립국어원에 태국국왕 이름 표기에 대한 검토를 요청했는데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현지어는 표준어에 있는 음운과 대응시켜 한글로 표기하기 때문에 각국의 다양한 소리를 정확히 표기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러니 푸켓이나 푸껫, 꼬사무이나 꺼사무이, 코사무 등으로 표기해도 트집잡고 싶은 마음도 없고 이런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다만 일국의 국가원수와 총리의 이름 정도는 '최소한'의 통일성이 요구된다. 와치라롱껀 국왕의 아버지인 푸미폰 국왕은 70년간 태국의 국가원수였다. 수많은 외래어의 표기법을 다 맞출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수십년간 불리고 역사에 오를 중요인물 정도는 애초부터 제대로 표기하는 것이 타당하다.
'윤석열 대통령'을 태국어 발음으로 '윤속열' 이나 '윤송열' 로 소리나게 표기하면 애교라고만 넘길 것인가?
한참 써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한다’라는 또다른 조항도 있다. ‘와치라롱껀’으로 불려야할 태국국왕도 이젠 ‘와찌랄롱꼰’이란 관용이 적용되어 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태국 새정부가 출범하기 전이니 지금이라도 출처 미상의 ‘푸아타이’나 ‘스레타 총리후보’로 적는 오기(誤記)는 하루아침에 시정되길 바란다. ‘틀린 관용’을 수용하고 사는 것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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