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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태국 언론의 시각

조회수 : 11640 2019.08.16


아세안의 중심국가인 태국은 최근 한-일 무역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태국의 영문 일간지 방콕포스트는 8월 12일 별지 ASIA FOCUS에서 ‘불편한 이웃’이란 제목으로 최근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시작된 한-일 갈등을 자세히 보도했다.
태국은 1970년 이후 일본의 최고 투자국이고, 한국에는 신남방정책을 위한 거점국가라고 할 수 있다.  
신문은 지난 8월 2일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지역 안보포럼 뒤 포토세션에 나선 한-일 외교수장들의 ‘어정쩡한 모습’을 공개하며 최근 경색된 양국 관계의 분위기를 압축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측면으로 비딱하게 선 고노 타로 일본 외무성을 한 프레임으로 이끄는 장면이다.



방콕포스트는 한-일 무역갈등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물론 한국의 반도체 부품 소재 수입국과 그 비중, 한-일간 수출 규모와 관련된 그래픽까지 게재하며 최근의 파장을 알렸다.

신문은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한-일 양국의 비난이 뒤를 이었지만 한미 군사훈련 중인 최근 북한이 2주 만에 4번째 미사일을 쏘아 올렸을 때는 양국 간 갈등 때문에 둘 다 별말이 없었다고 시작하고 있다. 
신문은 일본의 경제규모와 내수시장이 크지만 남북한이 평화경제를 구축하면 곧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요지의 문재인 대통령 발언을 소개하며 역사적 기억이 양국 관계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또 최근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 노역자에 대한 일본의 배상 판결은 총 300여 개 일본 회사를 상대로 한 총 22만여 명의 피해자 소송으로 홍수를 이룰 수 있고, 그 보상 규모는 200억 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도 예상했다.
일본의 무역보복에 대해서는 ‘일본이 역사적 문제를 경제분야로 연결한 것은 잘못이며, 특히 그동안 자유무역을 추구해 온  일본의 입장과는 배치된다’는 한국인의 주장도 실었다.

삼성전자 한 임원의 ‘정치인들은 거의 모두가 죽어도, 대중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현안 문제를 둘러싼 보도와 함께 에릭 파팟 기자의 칼럼은 한-일 양국을 바라보는 태국인의 시각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상이 일본과 피해자 개인 간의 배상까지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수상과의 공동선언으로 과거 양국 관계가 공식 해결됐다는 ‘해괴한’ 주장을 담고 있다.
에릭 기자는 한국 김치도 좋아하고, 일본 라면도 좋아한다며 한-일 두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에 속한다고 칼럼을 시작했다. 가장 친한 두 친구 중 누군가가 이기는 것보단 서로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외국인으로 두 나라 사람들 간 깊게 뿌리박힌 증오심을 이해하긴 어렵지만 상처는 서로에 대한 존경을 통해 치료될 수 있다고 이어 나갔다.

그러나 제3국가의 언론인으로 한-일 양국을 바라보며 ‘균형 시각’을 가지려는 집착 때문인지 사례의 열거와 비유가 영 적절치 못하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의 극악무도한 식민 지배가 모든 나라들의 기억 속에 각인돼 있지만 한국도 베트남 전쟁 때 수만 명의 라이 따이 한을 배출시킨 어두운 과거가 있다는 예를 들었다.
또 한국이 일본 대사관이나 해외 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우는 것은 양국 간 화해를 위한 잘못된 행보이며, 이에 대한 일본의 무역제재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양비론을 펼쳤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 노역과 위안부 문제는 공식적으로 해결되었으며 1998년엔 김대중 대통령이 후손들이 미래를 위해 함께 나가자는 희망으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의 사과를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2차 대전 이후 태국은 ‘일본의 경제 식민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태국은 일본 경제와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2000년 중반 이후 한국 드라마의 방송과 K-POP의 인기로 태국 내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가 높아졌고, 이에 따른 관광, 한국 소비제품의 성장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대 태국 경제 투자 규모는  일본의 10%  이내에 머물러 있다.
2차 대전 당시 태국정부는 일본과 공수동맹을 체결하고 영국과 미국에 선전포고까지 했으나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1943년 무렵엔 태국 내 반일 활동을 묵인했다.  이후 1945년 일본 패망 직전엔 일본과의 전시 협정을 파기하고, 태국 내 친일파를 제거한 뒤 미국과 공조해 ‘자유 태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2차대전이 끝난 뒤엔 미국의 지원으로 UN에도 가입했다. 태국의 이런 일련의 외교술을 ‘대나무 외교’라고도 부른다.

방콕포스트는 기사와 칼럼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 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러나 양국 사이의 역사적 팩트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식민 지배의 피해자들이 여전한 가운데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꿈꾸는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해선 비판하지 않았다.
무역보복을 먼저 시작한 일본을 WTO에 제소하며 국제협조가 필요한 시점인 만큼 해외 언론인들에 대한 한일 및 남북문제에 대한  사실관계와 이해도를 높여 줘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